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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무와 꽃은 말이 없어도

경주문맥동인지

나무에 쓴 편지 발간사·황영선 월성 해자 발굴지에서 나무에 쓴 편지가 나왔다고 하지 요. 손바닥에 시를 쓰듯이, 한 줌 손안에 쏙 들어가는 작 은 크기의 나무에 써놓은 먹글씨가 오롯이 남아 그 모습 을 보여줍니다. 한 줄의 시처럼 짧은 말이 긴 여운을 남 깁니다. 누구였을까요? 이름은 알 수 없지만, 짧지만 긴 편지 를 써 놓은 그 사람은. 무슨 인연이기에 이렇듯 만나 이 계절을 함께 이야기하게 되는 걸까요? 팔을 벌려 어깨동 무하자고 조르는 토우들과 술래잡기라도 한 판 하고 싶 어지는 계절입니다. 한 번 각인된 것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 듯이, 우리 인연도 그러한 듯합니다. 풀밭을 지나가는 데,..
나무에 쓴 편지
발간사·황영선

월성 해자 발굴지에서 나무에 쓴 편지가 나왔다고 하지
요. 손바닥에 시를 쓰듯이, 한 줌 손안에 쏙 들어가는 작
은 크기의 나무에 써놓은 먹글씨가 오롯이 남아 그 모습
을 보여줍니다. 한 줄의 시처럼 짧은 말이 긴 여운을 남
깁니다.
누구였을까요? 이름은 알 수 없지만, 짧지만 긴 편지
를 써 놓은 그 사람은. 무슨 인연이기에 이렇듯 만나 이
계절을 함께 이야기하게 되는 걸까요? 팔을 벌려 어깨동
무하자고 조르는 토우들과 술래잡기라도 한 판 하고 싶
어지는 계절입니다.
한 번 각인된 것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
듯이, 우리 인연도 그러한 듯합니다. 풀밭을 지나가는
데, 내가 가진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소리로 방울벌
레들이 남은 가을을 노래합니다. 절박하면서 아름다운
생명이 담긴 그 소리, 문학도 그러한 듯합니다. 견딜 수
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출구를 찾아 나섭니다.
무엇으로 이 눈부신 계절을 기록할까요? 너무 고와서
말문이 막히고 너무 눈부셔서 차라리 눈을 감습니다. 그
래도 다 들리는 계절의 소리를, 그래도 다 보이는 계절
의 언어를, 방울벌레의 절박한 노래가 허공을 건드리고
갑니다. 무디어진 줄로만 알았던 심금이 파르르 떨립니
다. 가을은 끝도 없이 나뭇잎에 시를 써서 우체통에 넣
으라고 합니다.
텅 빈 원고지처럼 남은 가슴에 가을바람이 지나갑니
다. 시처럼 수필처럼 이슬이 촉촉이 스며드는 가을 길,
다른 누구도 아닌 그대가 있어서 참 좋습니. 마음에 여
백이 생기니 더없이 좋은 계절입니다.
나무에 쓴 편지처럼 짧지만 긴 여운이 담긴 작품들을
동인지에 담아, 함께 읽는 즐거움을 나누려 합니다. 여
기에 담은 글들이 남은 계절을 견딜 든든한 식량이 되었
으면 합니다.


경주문맥동인 열 분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

김경애 (시와 수필)
김명석 (시)
배문경 (수필)
유만상 (소설)
윤기일 (시)
장숙경 (수필)
진용숙 (시)
정서윤 (수팔)
최해춘 (시)
황영선 (시)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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